상품명 | 물의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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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물의 기록
저자: 안윤
출판사: 저스트스토리지
출간일: 2023-04-20
분야: 에세이
제본: 무선제본
쪽수: 248p
크기: 102*162 (mm)
ISBN: 9791198223234
정가: 12,000원
찻물을 올립니다. 여기 묶인 예순 편의 이야기는 들킬 수밖에 없는 저의 일부분이라서 당장 숨을 곳을 찾는 게 먼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찻물이 끓으면 당신과 마주 앉아 있는 것처럼 천천히 오랫동안 차를 마시려고 해요.
어땠나요, 라고 묻는 건 관두고 다만, 빈 찻잔에 뜨거운 차를 다시 채울까 해요. 제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그건 전적으로 당신 덕분입니다.
시간에 관해 자주 생각합니다. 낭비벽이 심해서 시간 아까운 줄을 모르고 살았네요.
낭비할 수 있는 게 시간뿐이었고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괜한 일에 참 많이도 기웃거렸구나 싶어요.
‘수기水記’를 쓰고 오 년이 흘렀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도 퍽 담담했지요. 뭐랄까. 이건 너무 나답구나, 싶었달까요. 별수 있나요.
남아 있는 나날도 살던 대로 살아가 보겠습니다. '수기水記’에 실었던 서른한 편의 글과 그 후의 시간이 담긴 스물아홉 편의 글을 여기에 함께 묶습니다.
말하자면, 즉석떡볶이의 짜장과 고추장 혼합맛처럼 오 년이라는 시간의 혼합인 셈이지요.
어땠나요, 라고 묻는 건 정말이지 관둬 버리고 마지막으로 희망 사항이나 적어볼까 해요.
책장을 넘기면서 당신이, 미량의 다정함을 맛보고 허기를 달랠 수 있다면, 오늘을 수월하게 견딜 수 있다면 저는 사실,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안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자주 바라봅니다.
흔들리고 있는 것들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갑니다.
살아 있는 나날은 대부분 흐릿하거나 담담합니다만,
그럼에도 어떤 날에는 실금 같은 빛이 찾아와 줍니다.
따가운 희망 같은 것을 남기고 갑니다.
그것이 말이 되고 글이 되고 때로는 침묵이 됩니다.
곁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침묵을
굳이 언어의 편으로 불러오는 일,
그것이 밥벌이와 더불어 하고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수필집 <수기水記>를 썼습니다.
영정 사진
사과 깎기
강을 건너다
연착
활활
문턱을 넘다
얼룩
얼굴퇴적층
꽃을 보다
그 노래
환절통
이사
밥벌이
눈길
사람
파문
흉몽
비 온다
애도
먼지들
간극에 닿다
무릎
피할수록
기다리는 사람
비존재느낌
국경
불안의 건축술
오래된 기미
파도 곁에서
뒷모습
하려는 말
불면의 계보
서가에서
카펫 위에서
낙엽 줍기
무직자, 검열관
바람을 맞다
아마도 지나친
어둠의 가장자리
다가올
우두두두두두
수박
나무를 심다
목소리
늦은 오후
바라본다
고인 물
완충
제자리
우리집
폭우
생일
ㅇ²ㄴ²ㅏㅠ
투게더
안심
유리잔
물비늘
구멍
야상곡
회복
못다 한 말
손안에서 사과를 굴릴 때 생각한다. 설익은 나의 껍질을 벗겨 내던 시간을, 단련되지 않은 내 안의 무딘 칼날이 무자비하게 나를 도려내고 멍들이던 시간을.
그 시절 나는 맴돌며 자꾸만 제자리로 돌아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검은 씨와 질긴 과육이 붙은 작은 동강이로 남은 시절, 제대로 맛보지 못하였으나 어느새 사라지고 없는 사과, 그것이 내 열아홉이었다.
지금의 나는 지난날의 나보다 능숙하게 사과를 깎는다. 과육이 변색되기 전에 빠른 속도로 얇게 껍질을 벗길 줄 안다. 칼을 다루는 손놀림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제는 사과를 껍질째 먹을 때가 많다. 껍질과 과육의 완전한 배합, 그것이 사과의 맛이고, 사과 자체라고 느낀다.
그럼에도 가끔은 이렇게 사과를 깎아 보는 것이다. 외로운 어떤 날, 손바닥을 펼쳐 무릎 위에 놓고 내려다보듯이 가만가만 사과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지나간 나를 정물처럼 바라보고 그려보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사과, 하고 말해 본다. 어디선가 풋내가 난다. 내 그림자로부터 풍겨 오는 냄새, 여전히 설익은 채 살아 있는 나에게서 풍기는 냄새다.
-15~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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