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나 조지아에 일하러 가.”
“아, 그 조지아 커피?”
“아니, 커피 아니고 와인이야!”
어쩌면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 나라 ‘조지아’는 커피로 유명한 곳이 아니라, 세계 최초로 와인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와인의 나라’이다. 이 책은 조지아로 인턴을 떠난 저자가 일 년 동안 그곳에 살며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마침내 조지아를 마음 깊이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더불어 저자가 몸소 체득한 조지아 생활 꿀팁과 숨겨진 보물 같은 조지아 구석구석 여행기, 그리고 조지아 알파벳 쉽게 외우는 법 등 유용한 정보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조지아를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묻어난 이 책은, 조지아를 처음 알게 된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입문서가, 조지아로 여행을 가고 싶거나 오랫동안 살고 싶은 이들에게는 유용한 가이드북이, 조지아를 이미 방문한 이들에게는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중한 일기장이 되어줄 것이다.
니니(ნინი, N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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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에서 일 년을 일하고 왔다.
‘니니(ნინი, Nini)’는 조지아에서 불렸던 조지아식 이름이다.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누가 볼까 봐 부끄러운 마음,
그런데 기록으로는 남기고 싶은 마음,
그럼에도 많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한다고 한다.
아무쪼록 조지아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다시 조지아 그 거리를 걷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SNS 아이디:
YouTube : DiDi Gamarjoba
Instagram : leblebi_jujube
E-mail : gamarjoba907@gmail.com
P.27
조지아는 참으로 투박하고, 여유롭고, 가끔은 어디로 통통 튈지 모르는 매력이 넘치는 나라이다. 코카서스 산맥이 보여주는 장엄한 자연과 빛나는 흑해, 그윽한 빵 냄새, 먹음직스러운 왕만두, 일상 속 늘 함께하는 와인은 여행자들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노란 조명이 가득한 밤거리, 때 묻지 않은 시골 마을,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여유로움, 그리고 조지아인의 순수한 웃음과 따뜻한 마음은 우리가 떠날 수 없도록 붙잡는다.
P.33
쌀쌀한 겨울, 처음에는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집은 춥고, 사람들은 무뚝뚝해 보이고 꼬불꼬불한 글씨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내가 이 나라를 좋아할 수 있을지 전혀 예상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조지아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점점 조지아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고 마음 깊숙이 사랑하게 되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이 생기고, 좋아하는 조지아 음식과 와인이 생기고 좋아하는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게 됐다. 조지아가 어떤 나라냐고 물어보면 신나서 설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조지아는 궁금해서라도 살아보기 충분한 나라, 아니 더할 나위 없이 새롭고 특별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P.45
조지아는 일상 속에 와인이 늘 함께한다. 오죽하면 ‘물보다 와인에 빠져 죽는 사람이 더 많다(ღვინოში მეტი ხალხი იხრჩობა, ვიდრე წყალშიო).’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가우마르조스(გაუმარჯოს, Gaumarjos, 건배)!” 한 마디면 조지아 사람들과 금세 오래된 친구가 될 수 있다. 한국 사람들 역시 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민족이지만, 조지아인들의 술 사랑과 주량은 결코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P.55
한창 포도 수확으로 바쁜 계절인 9월, 조지아 와이너리 조사를 위해 이곳저곳을 방문하며 진한 크베브리 와인과 갓 추출한 맥주를 연거푸 들이켜다 그만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응급실에 가본 적이 없던 내가 살면서 처음 응급실에 방문한 것이다. 세계 최초 와인의 나라가 나를 최초로 응급실로 보내다니! 조지아 의사와 간호사, 다른 환자들, 그리고 나중에 그 소식을 알게 된 조지아 친구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렇게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P.65
조지아어를 처음 봤을 때 하트 모양처럼 생긴 알파벳이 참 많다고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ო, ღ, დ’ 이렇게 언뜻 보기에도 비슷비슷하고 동글동글하니 내 눈에는 그저 하트처럼 보였다. 꼬불꼬불해서 아랍어, 태국어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완전히 다르고, 옛날 2G폰 시절 이모티콘을 만들 때 사용하던 특수문자처럼 생긴 조지아어. 보기에는 마냥 예쁜데 이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가서 살아야 한다니 대뜸 겁이 났다. 인사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어떻게든 할 수 있다. 일단 부딪혀보는 거다.
P.121
왜 푸시킨이 조지아의 음식이 ‘시’와 같다고 말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할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뜨끈뜨끈한 이메룰리 하짜뿌리와 묵직한 크베브리 화이트와인을 곁들이니 정말 시적 영감이 절로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야채 볶음에 고수가 듬뿍 들어가는 바람에 졸지에 야채를 안(?) 먹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아무렴 어때, 하짜뿌리와 와인만으로 이미 조지아 전체를 입에 다 머금은 것 같았다.
P.143
아무리 매일매일이 여행하는 기분이라고 해도, 조지아에서 살기 위해서는 뭐든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과 넓은 이해심을 갖춰야 했다. 무엇보다 조지아인의 도움이 정말 많이 필요했다. 열쇠를 복사하러 가는 것도 큰일이고, 아파트 관리비를 내는 것도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전기세를 제때 안 내서 전기가 갑자기 끊겨버리거나, 수도세를 잘 냈는데도 갑자기 물이 안 나올 때가 있었다. 동네 직원에게 전화를 걸면 물이 언제쯤 나올 거니까 그저 차분히 기다리라고 했다.
P.164
관광지를 벗어나면 오래되어 낡은 것들, 때 묻지 않은 것들이 우리를 반긴다. 거리 곳곳에 위치한 구제샵, <톰과 제리> 만화에서만 보던 두툼한 치즈들이 쌓여있는 동네 치즈가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오래된 광고 포스터, 핸드백처럼 빵을 옆구리에 끼고 가는 사람들, 일광욕을 한껏 즐기고 있는 개와 고양이들이 트빌리시의 진짜 매력에 빠져보라고 손짓한다.
P.229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그저 와인을 위해서라도, 코카서스 3국의 다양한 맛을 느껴보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방문해보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피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