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 정보
책 제목: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말하자면 도저히
부제목 : 당신이 우연히 마주하는, 생에 대한 엉뚱한 변명
저자: 우연
출판사: 글이
출간일: 2020-10-02
분야: 단편소설
제본: 무선제본
쪽수: 280p
크기: 105*175 (mm)
ISBN: 9791196945114
정가: 12,000원
책 소개
우연 작가의 첫 단편소설집.
타자의 변덕과 기분 때문에 좌절하는 삶.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말하자면 도저히》는 그런 삶을 접속사로 표현해 제목을 붙였다.
저자의 소설 속 인물들은 '우연(偶然)'이라는 생의 이해할 수 없는 법칙 속에서 부질없는 '잘난 척'으로 촌스러움을 자초하기도 하고, 괜한 '허영'으로 주변의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말하자면 도저히〉 그것이 생의 바깥에 있다 할 수 있을까.
총 12편의 단편은 개별적이지만,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각 단편마다 인물과 사건이 약간씩 다르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치를 통해 독자는 읽을 때마다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안에 등장인물들은 상처 ‘안’에서 새로운 상처를 기워가며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우리 이웃들이다. 그리고 독자 자신이기도 할 것이다. 부디 이 소설이 스스로와 화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저자 소개
우연
박완서는 불혹의 나이에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글쓰기는 훨씬 더 이전에 시작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나는 불혹을 훨씬 넘겨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10여 년쯤 지났다. 그 어디에도 내 글이 당선된 적은 없지만 글 쓰는 시간은 즐겁고 재밌다. 대단한 철학적 사고도 없고 거대한 소망도 없다. 단지 재미있을 뿐이다.
우리 엄마는 마흔일곱에 할머니가 되셨다. 나는 마흔일곱에 춤을 추기 시작했다. 웬 춤이냐고들 했다. 즐거웠다. 그것 말고 다른 이유는 없다.
글은 쓸수록 육체적이고 춤은 출수록 영적이다. 나는 글 쓰고 춤추는 53세 지금의 내가 좋다.
목차
016 그들은 나와 함께 쿠바에 가고 싶다고 했다
022 도대체 뭘 넣은 거니
038 그녀들은 결심했다, 유쾌하게 자살하기로
052 저기요, 카버씨
082 발을 불리는 시간
112 손잡이
144 애원
146 붉은 그림자
164 우리가 무한히 행복할 때
182 내가 초단편 소설을 쓰는 이유
190 내 친구가 월북했다니까요
236 아흔아홉 개의 신호등을 지나는 동안
278 작가의 말
책 속으로
나는 살아오면서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일이 한둘이 아니었으므로 이런 우연이 생의 본질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그들은 쿠바에 나와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17-18쪽
엄마가 가지고 있던 필터, 분잡한 삶의 찌꺼기들을 걸러내는 마음의 필터가 조금 전의 변기처럼 턱턱 막힌 것 같았다. 꾹꾹 눌러도 자꾸만 새 나오는 울분의 소리는 변기가 꺼억꺼억 하는 소리보다 더 참기 힘들었다. -도대체 뭘 넣은 거니, 35쪽
사각사각사각사각. 진영은 소설을 옮겨 쓰기 시작했다. 만년필이 검은 피를 토했다. 날카로운 촉이 노트에 상처를 낼 때마다 그 촉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피는 문장으로 변했다. 진영의 검붉은 피멍보다 더 깊은 빛깔의 피멍이 종이에 쓰며드는 것 같았다. - 저기요, 카버씨, 78쪽
너무 빨라도 안 되고 너무 늦어도 안 된다. 발을 뒤로 뻗을 때 그 움직임이 상대방의 상체에 전해져서도 안 된다. 상하체 분리는 탱고의 기본 법칙이다. -발을 불리는 시간, 87쪽
닉네임이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도 그 몸이 가진 특유한 긴장감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탱고의 매력이었다. -발을 불리는 시간, 88쪽
“때론 냄새로, 이미지로, 무늬로 책을 이해하기도 해요.” - 손잡이, 133쪽
길은 막혔나 싶으면 샛길이 나타났고 계속되나 싶으면 막혀 있어서 다시 돌아 나오곤 했다. -손잡이, 138쪽
우리는 시간에,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 왔고 언제까지나 이어질 어마어마한 시간에 갖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 끔찍한 삶을 견뎌 내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허무를 견디려고 없는 가치를, 있지도 않은 목적을 호출하고 창조해 내는 것이다. -붉은 그림자, 149쪽
욕망을 비춰 주는 거울이 있다면 과연 누구라고 그 거울 앞으로 서걱서걱 걸어갈 수 있을까. 영원히 놓여나지 못하는 욕망의 사슬이 내 몸을 칭칭 감고 있는데 그것을 배반할 용기가 과연 있을까. -붉은 그림자, 151쪽
더 이상 단물이 나오지 않는 칡뿌리처럼 씹고 또 씹으며 차마 뱉어 내지 못하고 견뎌 온 시간.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에게 타이르며 입안에서 공글리며 지나온 시간. 뒤돌아보면 발라 낸 생선가시 같은 시간의 시체만이 남겨진 듯한, 나에겐 그런 시간이었다. -붉은 그림자, 154쪽
생은 살수록 더 어려운 수수께끼를 내게 던졌다. 어쩌면 사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은 사건들에 떠밀려 여기까지 남겨진 것인지도 몰랐다. 그 어떤 비의도 없이 우연히 남겨진다는 것은, 무수한 우연의 연속. 나의 바깥에서 일어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힘에 끌려 바로 여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었다. -붉은 그림자, 156쪽
저자의 한마디
바깥은 온통 어수선해도 삶은 미라클하다. 기적을 찾아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떠난다. 일상이야말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으니까. 그래서 내 소설 속 주인공들은 그대들이다. 그대들이 없었다면 내 소설도 없었을 것이다. 내 삶을 채워준 당신들께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