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차리고 주변을봐 니옆에 널믿어주는 사람이 얼마나되는지

올해 추석, 엄마와 나는 아빠를 두고 말다툼했다. 파스타를 먹다 말고 엄마는 붉어진 눈시울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가족이었다. 어릴 때 상흔이 봇물 터지듯 떠올랐다. 가정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은 내가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것의 대부분은 부정적이라고 생각했다. 퇴사하고 내려온 고향에서 우연히 아빠와 엄마의 젊은 시절 일기장을 보게 됐다. 그 서재 앞에서 나는 가족이라는 오래된 역사를 안아줄 수 있게 됐다.
초등학생부터 29살까지 과정을 면밀히 담았다. 멋지게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잘됐는지 모르겠다. 잘 쓰고 싶었으니까. 그래도 남의 가정사를 엿보는 건 재밌는 일이다.

@carrrmila

1부 실낙원

2부 또 다른 가족

p.192

"잘 커 주셨네요." 라는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말
이야말로 자식이 부모님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임을 깨
달았다. 그간 홀로 싸워온 시간이 떠올랐다. 넘어지지 않
으려고 부단히 애쓰며 쌓아 올린 것들 말이다.
너무나 큰 위로였고 동시에 허탈했다. 이 네 글자를 아무
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 기나긴 밤을 지나온 것이.
그래 우리 모두 잘 커 주었다. 다른 누군가처럼 되는 대로
막 살 수 있었고 무언가에 중독돼서 문제를 회피할 수도
있었고 지극히 이기적으로 살며 내 안위만 챙길 수도 있었
다. 그러나 우리는 무너지지 않고 타인을 따스하게 살펴보
는 법을 익혔고 내 삶의 책임을 다하며 살기로 선택했다.
나는 가족에게 메워지지 않은 결핍을 갈구하곤 했는데
그것은 가족이 메울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신은 인간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