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솔직함이 담긴 여행 일기장, 훔쳐보고 싶지 않나요?”
310일, 5대륙, 19개국, 76개 도시를 떠돌며 기록한 세계여행 일기장
‘일기’는 독자를 상정하지 않고 작성한 글 중에서도 가장 사적인 기록이다. 체면, 겉치레, 허울 등이 벗겨진 적나라한 감정들이 무자비하게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처럼 보여줄 수 없는 글이기도 하지만, 나 아닌 타자의 일기는 한 번쯤 펼쳐보고 싶기 마련이다. 게다가 매 순간 기꺼울 것만 같은 ‘여행’ 중의 일기라면? 더욱이 엿보고 싶은 법이다. 누구든지 가보지 못한 곳, 그러나 가고 싶은 곳, 혹은 가봤기에 그리워하는 곳에서 필자가 느낀 실체적 오감들을 좇아보고 싶으니까.
여기 그러한 일면을 담고 있는 책이 있다. 310일, 다섯 대륙, 그리고 19개국을 유랑했던 필자가 여행 당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록한 일기장을 엮어낸 책이다. 여행의 민낯과 온갖 치부, 극한의 찌질함, 그리고 희로애락이 글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무언가 의아하기도 하다. 가장 사적인 기록을 가장 공적인 공간에 드러낸다니. 하지만 필자는 여행지에서 적시에 느낀 진솔한 감정을, 활자를 통해 다시금 함께 여행하는 듯한 생생한 감각을 공유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특히 지나간 여행의 추억을 갉아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간혹 가끔이 아닌 사람도 있다. 자주 구역질이 나는 사람, 전생에 무슨 업보라도 있었는지 갖은 통곡을 어깨에 이고 태어난 사람, 혹은 태초에 그것을 짊어질 힘이 모자란 사람. 결국 생의 목표가 행복이 아니라 통곡으로부터의 해방인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오욕은 사치이다. 당장의 크나큰 숙명처럼, 통곡에서 달아날 방법을 찾아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생을 견딜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 비행기가 떠오르는 동시에 덜컥 느껴지는 현생과 괴리된 감각, 공항 밖을 나서는 순간 이생(生)의 누구도 나를 모르는 듯한 나그네가 된 느낌. 즉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주도, 인생에서 실패한 낙오자도, 굶주린 소외자도 아닌 그저 여행자가 되어버리는 사실. 그처럼 속계로부터 해방되는 것만 같은 오감에 홀려 떠나는 건지도 모른다.
나도 그러했다. 어쩌면 통곡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떠난 여행. 그러나 행복을 좇아 떠난 것은 아니었으며, 길 위에서 갖은 희로애락을 겪어내어 궁극에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아간 여행이었다.
- ‘01 통곡에 대하여’ 중에서
그러나 나는 말을 삼켰다. 이래서 괜찮아졌으니 당신도 해보라는 말로 박약한 결론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마음을 섣불리 가늠할 수 없다. 아무리 유사한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타인의 삶을 그가 가진 성정에서 모자람 없이 누려보지 않고서는 고통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법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의 행복을 빌어주고, 안아주고, 응원하고 궁극에는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03 사랑에 대하여’ 중에서-
가끔은 넋이라도 잃은 사람처럼 갠지스강을 바라보았다. 흙탕물같이 칙칙한 이 강의 저변에는 생명을 다한 육신들이 가루 채로 수장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 말이 떠오를 때면, 나는 화장터의 불꽃을 좇아 걸어가곤 했다. 누군가 매일 죽고, 타고, 남은 재가 강물에 흩날리다 못해 침잠되어 버리는 곳이었다. 그곳에선 우리네 인생이 늘 부스러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살아생전 인연이 되었던 가족 혹은 인척, 지인들이 죽은 자의 넋과 명복을 간절히 빌어주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당신의 죽음이 수많은 사멸 중에 하나였을지라도, 삶이 얇은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고꾸라졌더라도, 적어도 그 존재를 사랑했던 이들의 역사 속에서는 절대 잊히지 않는 사실. 그것은 생(生)이 결코 부스러기가 아닌, 세상에 모종의 흔적을 남기는 각인처럼 느껴지게끔 했다.
‘06 바라나시에 대하여’ 중에서 -
당연하지만 잠은 고사하고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수치스러운 일을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야 할까. 무엇 하나 정리되지 않은 혼잡함 속에서 지난 일들이 닥치는 대로 떠올랐다. 스물한 살이 저물자마자 휴학을 했고, 8개월 내리 억척스레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렇게나 간절히 원하는 목표는 없었으며,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모조리 내려둔 채 애틋하게 준비해왔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강도를 만나거나 사고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상을 하며 두려워하다가도, 그마저 품어보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었다. 그렇게 소중한 여행이 누군가의 오욕과 배신으로 일그러졌다. 되씹어볼수록 정신이 또렷해졌다. 더는 몸이 떨리지도 않았다. 아니, 떨리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강렬하게 지나가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내가 겪은 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 숨겨서도 안 되고, 숨길 것도 없으며, 남은 것은 사건의 온 경위를 드러내어 곱절 사과를 받고 필경에는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는 의지였다.
- ‘12 성추행에 대하여’ 중에서 -
그러니까 고통스러운 일은 수어 번 마주하고, 곱씹어 보고, 곪아서 터질 때까지 부딪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틀린 문제를 보지 않고 넘어가면 또 틀리고, 아픈 몸을 고치지 않고 두어두면 더 아픈 것처럼 마음의 고통도 그러했다. 지금 부딪히지 않고 외면하면, 내일 더 산산이 조각나는 법이었다. 게다가 고통을 마주해보지 않고서는 내가 여전히 아픈지, 혹은 조금 괜찮아졌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도 없다. 그래서 바라봐야만 한다. 그러면 다시금 모양과 형태가 비슷한 고통이 다가왔을 때, 아프지 않게 긁히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게 된다.
아픔은 필경 다른 사람의 고통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성범죄엔 도통 무심했던 내가 남의 아픔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게 된 것처럼 말이다. 결국 고통은 본디 이기적인 인간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채 살아가라고 내려준 보루 같은 것이 아닐까. 남의 아픔을 함부로 가벼이 하지도, 괄시하지도, 동정하지도 말라고.
‘21 고통에 대하여’ 중에서 -
가끔 시간이 무서울 때가 있다. 갖은 노력을 해도 붙잡히지 않는 것, 만고의 풍상 속에서도 지독할 정도로 태연하고 일정하게 흘러가는 무형의 존재. 그것이 멈추길 바라던 어떤 날에는 시계의 초침을 뜯어내면 될까도 싶었는데, 곧 바보 같은 생각임을 깨달았다. 시곗바늘은 추상적인 대상을 그저 보기 좋게 형상화해 두었을 뿐, 그걸 만진다고 시간까지 바꾸거나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세상에 있는 모든 초침이 부러지더라도 시간은 도무지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이따금 상기할 때면, 온몸이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세상에는 어떤 노력으로도, 갖은 시도로도 불가능한 게 있구나 싶어서.
‘28 종말에 대하여’ 중에서 -
일기에는 그렇게 적었다. 하늘을 바라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마치 또 하나의 인생을 사는 것만 같던 기나긴 여행처럼 지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오늘같이 죽음을 대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여행과는 다르다. 생의 종말은 대개 갑작스럽고 요원하게 찾아온다. 그래서 마지막을 정해놓고, 그간의 기억을 가지런히 정리해보는 건 여행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인생도 그렇게 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에게 그런 인생이 없다는 사실을 되씹다 보면, 앞으로 돌아간 생에서 어쩐지 무엇이든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도 같다.
‘28 종말에 대하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