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듣던 첫째 딸의 본격 독립 프로젝트!
7평 방에서 혼자를 키우기까지의 독립 에세이.
<당신도 혼자 살고 있나요>는 29살 싱글 여성이 독립 준비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독립 후에 새롭게 알게 된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 새롭게 발견한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모두가 독립인간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이야기들을 엮은 책이다.
3살, 8살 터울의 동생을 둘이나 둔 다둥이 집 첫째 딸이 독립생활을 시작하며 겪는 좌충우돌 에피소드와 독립 후 자신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들여다보는 깨달음의 과정이 솔직하고 유쾌하게 그려져 있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 잘 듣던 ‘노잼라이프’를 청산하고 자신만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찾아가는 진솔한 에피소드를 통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보는 ‘홀로서기’에 대한 저자의 답변을 엿볼 수 있다. 모두에게 각자의 독립을 권하며, ‘당신도 혼자 살고 있나요?’를 질문하는 책.
한 번도 예상에서 벗어난 적 없던 말 잘 듣는 큰 딸이었다.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안 하는. 암묵적으로 정해진 규칙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다. 하라는 공부 열심히 했던 학창시절을 지나, 그 흔하고 요란한 사춘기도 없이 대학을 졸업했고, 한 번의 취업과 한 번의 이직을 거친 사회생활 5년차 직장인이었다. 그렇게 그냥 저냥 지내다가 시집이나 갈 줄 알았던 큰 딸의 난데없는 ‘가출 통보’에 4개의 눈동자가 데룩데룩 굴러다녔다.
그렇게 나와 부모님의 독립기가 시작되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엄마가 없을 때는 네가 엄마야.”
막내 동생이 태어났던 9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 그 말은 배 한 번 불러본 적 없는 초등학생에게 없던 모성애를 불어넣는 마법 주문이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나는 동생들의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대타 엄마’가 되기 위해 어려서부터 나는 무엇이든지 스스로 척척 해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렇게 어른스러운 척하는 아이로 자라났다.
<엄마가 없을 때는 네가 엄마야> 중에서
소소하고 시시하고, 돌이켜보니 노잼이었던 학창시절이 지났다.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행복하고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찌릿찌릿했던 일은 없었다. 물론 머리가 굵어진 후에는 나름 소소한 일탈을 저지르기도 했다. 야자 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가거나, PMP에 ‘인강’ 대신 드라마를 가득 채워 자습시간에 몰래 보는 일탈들. 그럼에도 나는 결국 FM 학생이었다. 나는 한 번도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의심하지 않았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학원에 갔고, 학원에 늦을까 저녁을 거르고 헐레벌떡 숙제를 했다. 대학 가면 실컷 놀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을 붙잡고 대학에 갔다. 드디어 ‘나만의’ 시간을 자유롭게 쓸 줄 알았다.
그런데…… 스무 살 성인이 된 나는 ‘11시 통금’이라는 새로운 규칙을 받았다. 에라이~ 그럼 그렇지. 속았다!
<대학 가면 달라지나요?> 중에서
혼자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은 물리적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혼자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타인과 독립된 인간으로서 경계를 마련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친밀함의 공간, 혼자만의 공간> 중에서
내가 ‘나’를 모르는데, 이러다가 어영부영 또 주변의 규칙 대로 등 떠밀려 결혼하는 건 아닐까? 그 다음은? 아이를 낳으면? 지금의 가족 공동체를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꾸리면 나는 어떤 모습이 되는 거지? 아니,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나와 잘 맞는 평생의 짝을 고를 수는 있는 걸까? 고민이 쌓였다. 불안하고 조바심 나고 급기야 억울해졌다. 내 공간 한 번 갖지 못하고, 내 시간을 마음껏 쓰지도 못하고 독촉을 이기지 못해서 결혼해야 하는 거야?
말도 안 돼!
<당신은 독립적인 사람입니까?> 중에서
“유난이다, 유난이야. 2년 살다 말 곳에 돈 낭비 시간 낭비, 생고생을 하고 있어.”
왜냐고?
2년이나 살아야 하는 내 공간이니까, 하루를 살아도 내 집이니까. 커튼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는 혼자의 방에서 나는 ‘맥가이버 혠’으로 진화 중이다. 필요 없는 찬장 문을 떼고, 필요한 위치에 선반 위치를 조정한다. 벗겨진 타일을 새로 붙이고, 샤워부스에 덜렁거리는 실리콘 쫄대를 갈아 끼운다. 작은 벌레들이 들락거릴까봐 바닥 장판과 벽지 사이 틈을 실리콘으로 메운다. 실리콘 건은 살아생전 손에 쥐어본 적도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에겐 유튜브가 있고 네이버가 있다. 처음이니까 더듬더듬, 그만큼 더 공들여서 손때를 묻히면 된다.
<맥가이버혠> 중에서
철저하게 나의 통제와 자율로 운영되는 7평 공간에 앉아서 물욕이 없었던, 아니 없다고 생각했던 29년을 돌이켜본다. 세상에 욕망 없는 사람이 있을까? 결국 바라는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 뻗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분배할 것인가를 둘러싼 가치의 문제. 매월 통장에 찍히는 한정된 월 급으로 7평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지에 대한 우선순위의 문제.
오늘도 7평 방에 덩그러니 앉아 나의 욕심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내 기준의 쓸모를 알아가고 한정된 자원을 우선 분배할 곳을 선택한다. 나에게 독립이란 욕망 에너지가 뻗는 방향을 알아가는 것. 내가 판단하는 쓸모의 우선순위를 배우는 것, 나의 취향을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다.
<쓸모없는 것과 쓸모 있는 것> 중에서
엄마 말이 맞았다. 뭐든지 돈이다. 움직이면 돈이다. 머리를 감아도, 세탁기를 돌려도, 침대에 꼼짝 않고 웹툰만 봐도. 수도 요금이며 전기 요금이며 샴푸, 세제, 이불 한 장까지 돈이 안 들어가는 게 없다. 방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며 한 달을 보내도 은행은 작고 귀여운 내 통장에서 가차 없이 대출 이자를 빼가겠지. 집 밖에 나가면 다 돈이라더니. 이제는 집 안에 있어도 다 돈이다.
<독립은 돈지랄> 중에서
약속이 없는 날 퇴근길 저녁, 지하철 플랫폼에서 생각한다. 집에 뭐가 남았지? 아보카도가 곧 발효될 것 같던데, 먹어 치워야겠지? 아보카도 덮밥? 냉동실에 얼린 밥이 있나? 아씨, 밥 이 없는데. 그럼 아보카도 샌드위치? 집에 남은 빵은 있나? 오늘은 너무 귀찮은데 그냥 바나나와 같이 쉐이크로? 자꾸 혼잣말을 하던 엄마가 어느덧 나에게 자리 잡았다.
<오늘은 또 뭘 먹지> 중에서
어른인 척하는 아이는 어른인 척하는 어른으로 자란다. 마음이 제대로 영글어보지 못하고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경험 없이 갑자기 신체적 나이도 어른이 된다. 하여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운다’는 캔디 같은 만화영화를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서 문제라니까.
<대성통곡의 방> 중에서
엄마도 없고, 선생님도 없고, 검사 받을 규칙도 없는 방. 엄마도 모르고, 옆집 아줌마도 모를 테지만 나를 돌보고 나 사용 법에 맞는 처방을 내려줄 때마다 내가 알지. 아빠 엄마가 없는 혠룸에서 나를 돌보는 사람은 바로 나다.
<엄마가 없을 때는 내가 엄마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