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나날들, 제주 서른 달

2021년, 코로나를 피해 딱 일 년만 제주에서 살아 보기로 했습니다.

그 후로 매년 올해가 정말 마지막인 것처럼, 삼 년째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모든 순간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하루하루, 그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나날들을 기록했습니다.
저와 두 아이들이 제주에서 살아온 지난 서른 달 동안,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온 몸의 세포 하나 하나에 가득 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두 아이들이 여덟 살, 여섯 살부터 쓴 일기에 저의 사진과 글을 담았습니다.
제주 작은 마을에서의 일상 정취를 느끼고 싶으신 분, 두 아이와 함께하는 제주 일 년 살기가 어쩌다 삼 년이 되었는지 궁금하신 분, 

그 시간 동안 제주에서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알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또한, 도시 대신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분들께도 이 책이 다정한 발자국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눈부신 나날들, 제주 서른 달>이 첫 독립출판입니다.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일을 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제주의 작은 마을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마을 아이들과 함께 그림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Prologue • 아홉 살 유안이의 편지
엄마 아빠께
다정하게 반짝이는 우리의 기록들

모든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 2021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일들
이 순간 즐겁다면 그걸로 충분해
낯설지만 다정한
모자를 잃어버린 도토리에게 새 모자를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
힘겨운 일은 구름 그림자처럼 가볍게 흘러가길
공감각적인 다채로운 기억
무화과가 맛있어지는 날이 오면
처음 보는 생물과의 조우
바지락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
귤꽃이 귤이 되는 시간
그리움을 이기는 방법
어디선가 멈춘 물줄기처럼
폭포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애기동백과 토종동백

아쉬움을 채워가는 또 다른 • 2022
이웃이 가까운 삶
조금만 더 천천히 자라줘
솔방울 사용설명서
비가 금방 그칠 거라는 믿음
촉감도 간직할 수 있다면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올레길
너를 놓아주는 방법
순간의 망설임
처음 해 보는 일들이 늘어간다
그믐달 반딧불은 부서진 달 조각
개미의 시선으로 본다면
배도라치 집에 노크를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럴듯한 생각
관심을 가지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
오늘의 별과 내일의 별은 그 자리가 다르므로
엄마, 지안이처럼 예쁜 애를 어떻게 골랐어?

여유를 가지고 보다 의미있게 • 2023
어떤 한 가지에 평생 몰입한다는 것
곧 사라질 발자국이라고 해도
지금은 싫어해도 어쩌면 좋아질지도 몰라
제주 물고기는 추위를 잘 타
오늘은 소박하지만 언젠가는
기적의 놀이터
숲에서의 시간
클래식을 흥얼거리는 아이들
옥수수를 떼어주는 마음
우리 집 마당에 몰래 놀러 오는 손님
날씨가 좋으면 한낮부터 노을을 기대해
바다를 보면 마음이 너그러워져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Epilogue • 여덟 살 지안이의 편지
슈퍼 블루문에게

엄마, 아빠께.

저는 제주도가 좋아요.
여기에서 정말 행복해요.

계절마다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고,
매달 새로운 꽃이 피고,
날마다 다른 구름을 볼 수 있어서 좋아요.

후박나무 아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친구들이랑 운동장 잔디에서 뒹굴고, 조밤을 주워서 까먹는 것도 즐거워요.

일 년만 더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하루하루가 다른 이곳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마음껏 뛰어놀고 싶어요.

저에게 앞으로는 힘든 세상만 남아있다는 걸 알아요.
그러니까 딱 일 년만 더요.
딱 열 살 까지만요.

- 제주에서의 두 번째 일 년이 끝나가던 어느 날, 유안이의 편지

나는 유안이의 편지를 읽고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웃고, 다정했던 우리의 눈부신 나날들에 대해. 

늘 제주에서의 시간을 그리워할 우리에게, 언제든지 꺼내 보면서 서로 실컷 이야기할 수 있는 선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나에게 앞으로 남은 모든 날들 중 가장 돌아가고픈 순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지나간 시간을 헤아려보니 서른 달이었다. 

아이들의 일기에 나의 단상과 사진을 더했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코 끝에 한숨이 머물 때, 잠시 눈을 감으면 이 기록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다정하게 반짝거리길. 

그 빛을 따라 또 다른 눈부신 나날들을 모아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