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목싸목 걸었제 1

어르신 스물 세 명의 삶이 담긴 <싸목싸목 걸었제> 

평범한 삶이지만 그들의 기억 속에는 현대사의 단편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런 점에 주목하여 광주광역시 동구는 어르신들의 생의 기록을 통해 시대의 기록을 남기고자 <어르신 생애출판사업>을 진행했고,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만화애니메이션 학부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다섯 권의 책을 완성하였다. 스물 세 명의 참여자들이 여름 내내 써내려간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지난 삶을 엿보고 그들의 시대를 빌려본다. 

높은 벼슬을 하라며 닭고기도 벼슬 부위를 떼어 먹여주던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선생님이 된 김성자 어르신, 힘들었던 시절을 뒤로 하고 국악의 길로 들어선 조귀단 어르신, 모두가 어려웠던 그 시절을 절약과 저축으로 이겨내고 지금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의 삶을 살고 계신 권숙경 어르신, 80세가 넘는 나이로 멋진 자이브를 추고 계시는 강복순 어르신,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광주농업기술학교에서 가르침을 준 의재 허백련 선생의 뜻을 따라 아직도 농업 연구에 힘을 쏟고 있는 정병춘 어르신 등.. 때로는 고단했고 때로는 아름답고 거룩했던 그들의  기록을 읽다보면 누구보다 위대했던 그들의 삶의 발자국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이 글을 쓰며 반추했던 그들의 생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시간에 대한 귀한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또한 글을 쓴 어르신들이 그러했듯이 글을 읽는 독자 또한 길거나 짧았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선물같은 시간이 될 것이다.  

전남 무안군 몽탄면에서 

1953년 가을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요즘 취미활동, 봉사활동, 단체 활동, 시민기자 활동 등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완도군 신지면 가인리에서 1944년 6월 3일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요즘 못 배운 공부 하러다니는데 첫째는 병원,

둘째는 놀고 즐기면서 삽니다.

광주 서동에서 1945년 음력 9월 말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요즘 주 3회 헬스를 하고,

대학 동기생 모임으로 무등산 산책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죽사리에서 1939년 가을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요즘 광주 동구 중앙로에서 정산한약방,

광주한약도매시장(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충남 금산군 군북면에서 건강식품을 생산하고 있고,

화순 앵남리에서 한약재 제조업을 하면서 

대한한약신문의 발행인 겸 주필을 맡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서 1948년 봄날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요즘 난타를 배우고 있습니다. 또한 조단우리가락의 단장으로서 

판소리, 민요, 춤을 가르치고 국악공연과 자원봉사를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때에는 지금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 하나를 일단 써보라고 했던 사람은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였다. 누구나 아주 진실한 한 문장 정도는 갖고 있다고, 그런 문장을 쓰고 나면 바로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할 수 있다고 말이다. 글쓰기에 관한 수많은 조언들이 나를 스쳐갔지만 저것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럴듯하게 꾸며낸 조언이 아니라 절박함 속에서 경험한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이 기획되던 무렵에 나는 보나마나 좋은 책이 나올 것이라고 은근히 믿었다. 저 ‘진실한 한 문장’을 쓰는 힘은 오히려 아무 힘도 아닌 힘, 힘을 다 뺀 힘인데, 그 힘은 전문적인 글쟁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동네 어르신들에게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르신들 앞에서 글쓰기 특강을 할 때 나는 의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조금 부끄러워했다. 진실함에 대해서라면, 어르신들이 써낼 글에서 오히려 내가 배울 게 많으리라 짐작했으므로.  그래서 완성된 원고를 보고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예상대로 여기에 진실하지 않은 문장은 하나도 없었다. 진실한 한 문장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되어 쌓이면 이런 글이 된다. 나는 한 인간이 노년에 이르러 자신의 생을 정리하며 쓴 글에는 두 가지 가치가 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사회적으로는 한 시대에 대한 ‘증언’으로서 기능할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지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분명히 그런 책이 되었다.     

이 책을 기획한 광주광역시 동구청 인문도시정책관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에 경의를 표한다. 성과주의에 매몰된 사업과 인간에 대한 진심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은 이렇게나 다르다. 단정한 문장과 공들인 삽화를 보면서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만화애니메이션학부 여러분들의 마음도 느꼈다. 그것은 아마 건조한 아르바이트생의 마음이 아니라 무언가 자꾸 애틋해지는 손자 손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모든 분들의 큰 마음에, 내 작은 마음을 감히 보탠다.                   

신형철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우리는 종종 오래된 역사는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가까운 내 주변과 과거의 기억은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던 마을의 역사나 내 부모님과 선대의 역사만큼 소중한 기억이 있을까요. 지역의 문화와 경제가 성장하려면 바로 내 고장의 기억과 역사적 사실을 소중히 여기는 데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번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기획하고 진행한 어르신 자서전 사업은 그런 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주의 역사를 가장 많이 아우르고 있는 동구, 한때는 언덕이고 들판이고 호수였던 아름다운 풍경의 기억들, 역사의 굽이마다 어르신들이 겪었던 생생하고 소중한 기억들. 어느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이야기가 없습니다. 서유석의 노래 중 ‘넌 늙어봤냐, 난 젊어 봤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유년기부터 청년, 중년, 장년을 거쳐 노년을 겪어 오신 어르신들의 기억이 아직 늙어보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는 귀한 선물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연히 만난 어르신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우리 동구에는 조선대를 포함해서 곳곳에 개천이 흘렀어요. 물이 얼마나 맑았는지 친구들과 물방개 잡고 물놀이도 했었는데, 언젠가 그 개울이 복원되면 좋겠어요“. 예전처럼 개천이 복원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어르신들의 기억이 글과 그림으로 구현되는데 저희 제자들이 함께 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어르신 자서전 사업을 기획한 광주광역시 동구청 관계자 여러분과 용기 있게 펜을 드신 어르신 그리고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큰 박수를 보냅니다.

황중환 (조선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