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술을 참 좋아합니다.
보통의 시간들이 조금 더 특별해지는 것, 별것 아닌 순간들조차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은 모두 제가 그동안 마신 술 덕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돌아보니 제가 지나온 길 여기저기에서 저는 이런저런 술들을 참 많이도 마셨더군요.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술과, 술을 마실 때면 늘 떠오르는 사람들 그리고 저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습니다.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들이, 저와 같이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은근한 위로와 공감으로 다가갔으면 합니다.
제가 꿈꾸는 인생은 바로 이런 겁니다. 단순하게, 그러나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으며 사는 것.
발뒤꿈치 관리는 못 하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생일 카드를 쓰고, 누군가 정해놓은 수많은 원칙을 미처 숙지하지 못해 늘 겉돌 망정, 꼼지락 꼼지락 무언가 세상에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해나가면서 살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맛있는 음식에 향기로운 술을 곁들이며, 그저 잘 걷고 잘 쉬고 잘 자면서, 마치 막걸리 빚듯이 단순하지만 정성스럽게.
- ‘막걸리를 빚는 마음으로(막걸리)’ 중에서
얼음을 섞어 마시는 사이공 비어의 차고 밍밍한 맛은 여전하더군요. 베트남의 풍경도, 제 모습과 마음도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는데 말이죠. 뜨거운 공기와 만나 금세 흥건해진 맥주잔의 표면을 가만히 바라보며, 저는 제가 생애 처음으로 떠난 배낭여행지와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씩씩했던 스물한 살의 저를 추억해 보았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때의 모든 것이 참 아름다웠다는 사실을요.
- ‘나의 첫 베트남(사이공비어)’ 중에서
커다란 컵에 맥주를 콸콸콸 가득 부은 후 뽁 뽁 터지는 거품을 보며 잠시 숨을 고르다가 컵을 집어 들고 크게 한 모금 꿀-꺽 삼켰을 때, 오렌지 껍질과 고수가 어우러진 상큼하고도 이국적인 향에 아득한 행복이 밀려옵니다. 유난히 상쾌한 목 넘김과 마시고 난 뒤에도 계속 입안에 감도는 향긋한 뒷맛까지도 너무나 사랑스럽단 말이죠.
살아가기 위해서는 좋아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참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에 너무 큰 무게를 두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고, 그 행복감을 온전히 느끼면서 살고 싶어요.
블랑을 마시는 순간, 하루를 마무리하는 반신욕, 숨이 가빠오지만 그래도 한 발씩 꾸준히 내디디며 산을 오르는 느낌, 남자친구의 두툼하고 따뜻한 손을 잡는 것, 티포트에 차를 정성껏 우려서 예쁜 잔에 쪼로록 따라 마시는 향기로운 순간, 카페에 앉아 바깥 풍경을 멍하니 관찰하는 일, 친구들의 실없는 농담에 배를 잡고 뒹굴며 깔깔 웃는 것, 약간의 죄책감 덕분에 더 즐거운 새벽의 넷플릭스 시청, 동네를 산책하는 길에 계절을 가만히 느껴보는 것, 창가에 매달아 놓은 대나무 풍경이 바람에 흔들려 찰랑거리는 소리, 창으로 들이친 햇볕이 벽지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놓은 평화로운 오후의 풍경.
- ‘내가 좋아하는 것(블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