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갈수록 반짝이는

인터뷰집 『지나갈수록 반짝이는』은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익명으로 들려준 저마다의 후회를 담고 있다. ‘후회’는 인생에서 돌이키고 싶은 순간을 말한다. 누구에게나 삶은 처음이기에 미래는 언제나 예측불허고, 지난 과거와 현재는 미완성, 불완전, 불균형을 지향하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스무 명의 예술가를 만나 저마다가 간직하고 있는 백인백색의 후회를 수집했다. 후회로 남겨진 경험이 저마다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가 궁금했다. 아울러 후회라는 감정 자체에 주목한다기보다는 후회에 비쳐서 나타나는 자신의 정체성,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 삶의 의미 등을 가능한 다채롭게 담아보려 했다.

후회에는 별다른 기준을 두지 않았다. 짧거나 길거나, 가볍거나 무겁거나, 사소하거나 거룩하거나. 그저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후회를 한 개만 들려달라고 부탁드렸다. 모든 글은 인터뷰이가 특정되지 않도록 익명으로 처리했다. 아울러 지나갈수록 반짝이는 해변의 물결 사진을 원고 사이사이에 함께 실었다.

번역과 구술기록을 업으로 삼고 있다. 정체성이 불분명한 창작팀 화수분제작소에서 훌륭한 동료들에게 기대어 이런저런 협업 프로젝트를 꾸려가고 있다. 개항기 인천을 배경으로 하는 보드게임 <모던인천>을 제작했으며, 30대 여성 프리랜서 인터뷰집 『티끌 모아 티끌처럼 살기』, 독립서점 인터뷰집 『동네에서 서점이 모두 사라진다면』 등을 펴냈다.

Instagram: hwasubunfactory

프롤로그
작업에는 후회가 늘 따라요
칭찬 한마디를 들으려고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집착했죠
이제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저 자신을 더 믿을 거예요
창피해서 물어보는 걸 많이 망설였어요
저는 제 몸을 돌보지 않은 게 유일한 후회예요
조금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마냥 쿨한 척 했어요
관심이 가면서도 선뜻 만나자고 하지는 못했어요
해외여행을 더 많이 다녀둘 걸 그랬어요
책 좀 일찍부터 읽을 걸 그랬어요
기억이 뒤죽박죽 되어버렸어요
그날 문구점에서 그 펜을 사는 바람에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었어요, 전화도, 문자도
어정쩡하게 굴다가 관계가 어색해졌어요
12월에 연락하지 않은 게 후회돼요
부딪치기 싫어서 환불해드렸어요
어릴 때는 아빠가 택시기사인 게 창피했어요
엄마도 선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어요
그 마지막 순간조차 저는 제 일이 먼저였어요
할머니는 마지막까지도 제게 무언가를 주셨어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제 그 애를 병원에 두지 않고 집으로 데려왔으면 어땠을까, 동료들과 밥을 먹을 게 아니라 바로 달려가서 마지막 모습이라도 봤으면 어땠을까, 집으로 데려왔더라면 그래도 가족 품에서 편안하게 가지 않았을까 하고요. 그 마지막 순간에서도 저는 제 일이 먼저였던 거예요. 그래서 그게 후회로 남았어요. 가족이라고 하면서도 순위가 밀려 있었던 거죠. 그 뒤로는 반려견을 못 키우겠더라고요. 늙어가는 모습도 보기 힘들고, 죽음이 또 그렇게 다가왔을 때 내가 모든 걸 제쳐두고 거기 매달릴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이 되는 거예요. 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요. 지금도 그 아이의 유골 단지를 가지고 있어요.”
(본문 104-105쪽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