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선에 개의 눈을 더한 독서-
재치 넘치는 문장과 기지로 독자를 사로잡는 에세이스트 구달은 개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견공 집사이다. 이 책은 개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일상과 세상을 보는 달라진 관점이 담겨있다.
책이 주는 다양한 교훈과 경험을 반려견 ‘빌보와 함께’ 또는 ‘빌보를 통해’ 깨닫고 감응한다. 반려견 빌보와 함께 하는 삶, 책 읽는 삶, 개 좋은 것들이 가득한 글 쓰는 삶을 엿볼 수 있다.
개인의 작고 사소한 경험이지만, 이 사회가 내비치는 ‘개’에 관한 편견을 정확히 문제라 여기고 작은 행동으로 변화되길 꿈꾸며, 사랑하는 반려견 ‘빌보’와 함께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하길 꿈꾸는 견공 집사 구달의 이야기.
읽는 것을 좋아하고 개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읽는 개 좋아’를 외치게 만드는 책.
구달
근면한 프리라이터. 《아무튼, 양말》 《일개미 자서전》 《한 달의 길이》 《당신의 글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공저)를 썼고, 《블라디보스토크, 하라쇼》 《고독한 외식가》 등 독립출판물 4종을 쓰고 그렸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 눈에는 그저 ‘개 바보’일 뿐. 가끔 원고를 구상하기 위해 혼자 동네를 거닐 때면 사람들이 다가와 묻는다. “빌보는요?”
반려견 빌보 양육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일주일에 사흘은 양말가게로 출근하고 있다.
일단은 그걸로 마음이 놓인다. 빌보의 작은언니, 그러니까 나는 노트북을 들고 살금살금 걸어가 빌보 옆에 눕는다. 빌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를 느끼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어서.-p.11
약자의 처지를 헤아릴 줄 모르는 작은 무지들을 현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동시에 가슴이 뜨끔하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무심코 그런 무지를 내비쳤을 게 틀림없으니까. 그래서 오늘 밤에도 나는 빌보를 다리 사이에 품은 채로 책을 펼친다. 현실에서 미처 눈에 담지 못한 삶의 이면들을 글로나마 읽어내기 위해서.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 다양한 높낮이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p.17
사고를 쳐서 주의를 끄는 방법으로는 원하는 걸 얻기 어려우니,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책파-비둘기파 연합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사고 치는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 간식값을 대느라 허리가 휘는 약간의 부작용이 뒤따르긴 했지만. -p.41
“진정한 행복”이니 “우정 어린 교감” 같은 말은 사람 입장에서 만들어낸 표현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나 개에게 ‘진정한’ ‘우정 어린’ 같은 수식어를 알려준다면 어리둥절해 할지도. 그냥 행복하고, 그냥 교감하면 안 돼? 빌보를 유심히 보고 있으면 진정성이나 영속성은 우정의 본질이 아닌 것 같다.-p.57
“여자에겐 언제나 운동장의 9분의 1쯤만이 허락되어 왔다”면, 개에게 허락되어온 운동장은 그보다 훨씬 더 작기 때문이다. 일단 현대 도시 개는 외출 시 반드시 리드 줄을 착용해야 한다. 빌보는 3미터짜리를 사용하는데, 줄을 바투 잡기 때문에 실제로 빌보에게 허용되는 ‘공간’은 1미터 남짓이다.-p.63
고국에 반려견을 두고 온 한국인 관광객 셋은 아침마다 산책 겸 성 네포무크 동상까지 걸어가 왼쪽 부조의 개를 문질렀다. 그리고 빌보가 네발 모아 빌 법한 소원을 열심히 대신 빌었다. “빌보야, 오메가 소시지 두 줄 먹어.” “빌보야, 산책길에 웬디 만나서 신나게 놀아.”-p.84
사람들은 자꾸 우리를 가르치려 든다. 35년 동안 ‘어린애→어린 여자→젊은 여자’로 취급당하며 인이 박였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빌보와 함께 걸으면서 훈수의 신세계가 열렸다.-p.94
우리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가령 산책길에 “물어요?”라고 묻는 사람이 꼭 있는데, “안 물어요.”라는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빌보 머리로 덥석 손을 뻗는다. “○○야, 착한 개래. 한번 만져볼까?”라며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체험학습을 시작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만져도 되냐고 양해를 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낯선 손길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주체가 빌보라는 걸 왜 모를까.-p.95
리베카 솔닛을 비롯한 페미니스트 작가들이 내 손에 쥐여준 것은 책이 아니라 판도라의 상자였다. 나는 그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언어다. 찝찝함, 불쾌감, 두려움 때문에 꽉 다물었던 내 입을 트이게 해준 언어. 마침내 입을 벌린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말은 사실 별거 없다. 성별과 상관없이 개와 즐겁게 산책할 수 있는 세상 만들기. 단지 그뿐이다.-p.102
니시카와 미와에게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장면이 이제 내게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가 시시콜콜한 쥐의 캐스팅 비화를 성실히 글로 옮겨준 덕분이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더는 외면하지 않게 된 장면을 성실히 기록하고 싶다. 세상의 시시콜콜한 사연에 눈뜨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세상이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고 믿으니까. 쥐와 개와 인간이 얽힌 세상에서, 쥐와 개와 인간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니까.-p.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