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대한항공 승무원이 전하는 7년간의 비행과 여행
<내일은 샌프란시스코 비행을 갑니다>
코로나19로 비행과 여행길이 막혀버린 현 시국,
승무원인 저자 또한 비행보다는 휴직이 긴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넋 놓고 상황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잃어버린 일상을 지난 추억으로 대체하고, 여러 기록들을 공유하며, 다시 날아오를 미래를 그려보고자 한다.
저자는 2016년부터 문화일보 지면과, 인터넷에 약 40편의 칼럼을 게재해 왔다. 그 칼럼과 더불어, 7년이라는 시간동안의 비행과 여행을 기록한 사진들을 이번 책에 담았다. 또한 코로나19 이후의 비행도 현장감 있게 추가했다.
승무원의 비행은 물론, 일반 사람들의 해외여행까지 모두 중단된 요즘, 저자가 겪은 크고 작은 일들이 그 갈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현재 관심이 있거나, 지난 시간 어느 시점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자세히 그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이 다시 일상이 되는 그날, 어딘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읽은 독자를 한분이라도 만나게 되기를. 그때는 지금의 이 답답한 현실이 허허 웃어넘길 수 있는 추억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 2021년 4월. 어제의 비행을 추억하고, 내일의 비행을 기다리며,
정석찬
정석찬
대한항공 승무원(2014~)
문화일보 ‘정석찬의 에어카페’ 칼럼니스트(2016~)
비행하고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여행이 좋아서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그 직업 안에서 다양한 취미활동으로 일상을 채우고 있습니다. 바쁘다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게 바쁘지 않고, 부지런하다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습니다. 저를 수식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을 얼마 전에 찾았는데, 바로 ‘게으른 완벽주의자’. 마음먹기까지 오래 걸리고 꽤나 많이 미루지만, 한다고 하면 허투루 하지는 않습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 @fly_grapher
코로나19 이후의 비행은 우리 승무원뿐만이 아니라, 탑승하는 승객들에게도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기내에서의 마스크 착용은 의무화가 되었지만, 다른 보호 장비들에 대한 기준은 따로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정말 다양한 모습들의 승객이 눈에 들어온다. 온몸을 방호복으로 가리고 타시는 분도 있고, 초기에는 방호고글이 아닌 스키 고글을 쓰고 타시는 분도 있었다.
서비스를 할 때도 다양한 승객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간소화된 서비스마저도 사양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개인적으로 나눠드리는 물을 조금씩 드시는 것을 제외하면, 마스크 벗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일 것이다. 우리 또한 그런 승객들에게는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접촉을 삼가고 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좋은 서비스를 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독이 될 수 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코로나의 탑승' 중에서
2005년 1월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에서, 남자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에도 서비스업에 관심이 많아 호텔경영학 과정을 알아보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새로운 직업을 알게 된 나는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아버지께서 먼저 말을 걸어 주셔서 잠깐이나마 남자 사무장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 짧은 비행에서의 만남이 8년 뒤 대한항공 승무원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대만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 한 대학생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저기 죄송한데요. 바쁘시겠지만 잠깐이라도 시간이 나시면 질문 몇 가지만 드려도 될까요?”
여유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은 비행이었지만 그 학생의 눈빛이 너무도 절실해 보였기에, 식사 서비스가 끝나자마자 바로 자리로 찾아갔다.
“제가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막막해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스튜어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스튜어드가 되고 싶어요' 중에서
그렇게 며칠이 지나 런던에서의 시간을 보낸 후, 스탠스테드 공항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 수속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아찔한 상황이 발생했다.
내가 타려고 하는 비행기는 완전히 만석이 되어버렸고 그 다음에 있는 편수들도 모두 오버부킹이라는 것이었다.
정말 탈 수 없는 거냐고 재차 물어보고 부탁했지만, 일단은 수속 마감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말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예약했던 승객들은 모두 체크인을 마쳐 결국 좌석은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런던 시내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 체크인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나를 불렀다.
“너 혹시 점프싯(비행기에서 승무원이 앉는 자리)이라고 알아?”
“그럼! 나 승무원이야!”
“거기라도 괜찮아? 기장한테 연락해보고 괜찮다고 하면 거기엔 앉아 갈 수 있어!”
나는 두말할 것 없이 상관없다고 태워만 달라고 대답했다.
간혹 외항사를 이용하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긴다고 듣기는 했지만, 오늘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 '다른 항공사 승무원 자리에 앉아 가는 일' 중에서
오늘은 뉴욕에서 한국과 정반대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서 자야할 시간에 맨하탄을 돌아다니고, 모두가 일어나는 시간에 잠을 청한다.
이틀의 시간이 지나면 한국에서의 짧은 휴무를 마치고, 다시 다른 비행을 떠나 다른 시차 속에 생활을 한다.
시차에 적응하는 승무원들의 방법은 굉장히 다양하다.
기본적으로는 아예 적응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착한 곳이 아침이라도 피곤하면 잠을 청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활동을 하기도 한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하는 굉장히 본능적인 시차 속에 살아간다.
반면에 나는 현지 시차에 맞추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편이다.
- ‘내가 사랑한 그곳의 시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