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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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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 정보

책 제목: 여행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자: 조아연
출판사: 하모니북
출간일: 2020-09-19
분야: 에세이
제본: 무선제본
쪽수: 184p
크기: 127*188 (mm)
ISBN: 9791189930523
정가: 17,600원


책 소개
사람의 이야기, 곧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 이에게 바치는 책
여행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깊게 알게 되고 때때로는 함께 여행한 사람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흔히 우리는 '어디'에 가는 것보다는 '누구'와 함께 여행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데 있어서 여행이 정답은 아니지만, 여행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부분도 존재한다. 일상의 자리에서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떠나지 않고 알 수 없었던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책은 저자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 함께한 사랑하는 이의 이야기, 여행 중 만난 타인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세 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감정,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 그리고 친구나 가족에게 느끼는 감정과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다. 거창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사소하고 소소한 기록이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또한 태국, 미국, 모로코, 프랑스, 이탈리아, 칠레, 크로아티아, 포르투갈을 포함한 다양한 나라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저자 소개
글·조아연
살면서 꼭 여행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여행하는 것을 멈추지 못해 꽤 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일은 설레고 신나지만 동시에 긴장되고 무섭고 귀찮아서 좋아하는 일이 여행이 아니었으면 했다. 하지만 여행보다 더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해 정신 차려보면 또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떠난 어느 낯선 장소에서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고요한
사랑하는 사람과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목차
이야기 하나. 나의 여행
치과에서 만난 태국
뉴욕과 고양이
메디나에서 안경 고치기
파리와 마카롱
오로라에 마음을 묻는 곳
도망칠 때 만났던 풍경
멜론
아름답지만 아름답지 않은
상처와 흉터
좋아하는 것들

이야기 둘. 너와의 여행
낭비 
이정표 
낯선 곳에서 혼자가 아니란 것은 
내가 아는 너 
비 내리는 부다페스트 
단골식당 
빨간 장바구니 
생일을 축하하는 방법 
기억하자 
여전히 넌 내가 예쁠까

이야기 셋. 당신들
비냘레스는 어떤 곳인가요 
3,300원과 26,000원 
밥 한번 같이 먹어요 
갈색 가디건 
팔찌 파는 10살 
소금 사막을 즐기는 방법 
다시 한번 몽골에 간다면 
이스탄불에서 보내는 꽃다발 
노 머니 피셔맨과 머니 피셔맨 
낡고 오래된 것들 가운데

닫는 글 | 여행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책 속으로
이러니저러니 해도 난 여행을 좋아한다. 좁은 방에서 세상이 끝날 것처럼 울다 도망치듯 여행을 떠나고 다시 한번 잘 살고 싶어 돌아온다.
우리는 누구나 도망칠 장소가 필요해서 여행을 떠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사랑스러운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그 순간들이 당신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면 그 시간은 당신에게 작은 여행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다 버리고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떠나지 않아도 당신은 충분히 용기 있고 잘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무게에 지쳐 훌쩍 떠나고 싶으면 떠나도 괜찮다. 당신이 길 위에서 만나는 작은 찰나의 순간들이 인생의 아름다운 한 장면이 되기를 기대한다. 내가 길 위에서 만난 사소하지만 반짝이는 순간들이 잊지 못할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던 것처럼 부디 당신의 여행도 그러하길. 
- ‘여행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중에서

커다란 배낭과 낡고 더러운 운동화. 선크림도 차마 막아주지 못해 생긴 기미와 잔주름. 예전과 비교해 불어난 체중과 미용실을 가지 못해 얼룩덜룩한 머리카락. 늘어난 속옷과 까맣게 그을린 피부. 쪼리 자국이 선명한 못생긴 발등. 마구잡이로 구겨진 반팔에 살짝 생긴 구멍을 애써 모르는 척하고 대충 입는 나.

여행하는 나는 빈말로도 예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가끔 너랑 여행하는 게 잘하는 일인가 싶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은지 싶어서 슬그머니 걱정이 차올랐다. 가끔은 거울을 보고 깜짝 놀라 날 싫어하면 어쩌지 싶다가도 한결같이 날 보고 웃어주는 너의 모습에 안심한다. 너는 날 보고 웃는다. 시선이 느껴져 뒤돌아보면 넌 항상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이런 날 보고 예쁘다고 하루에도 몇 번을 말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너의 카메라에는 내 사진이 가득하다. 사진 찍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나의 어색한 웃음조차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너. 너의 사랑은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나의 모습을 끌어안는다. 우리는 낡은 숙소의 더블 침대 위에서 마치 오래 보지 못한 연인처럼 입을 맞추고 허리를 감싼다. 너의 손은 뜨겁고 조심스러워서 늘 나를 처음 만지는 것 같다. 낡고 늘어진 속옷이 벗겨지고 태양에 타지 않은 흰 속살이 침대 위에 뉘어질 때 우리는 조용히 눈을 감고 서로를 찬찬히 음미한다.
- '여전히 넌 내가 예쁠까' 중에서

살면서 밥 한번 같이 먹자는 의례적인 인사를 지킨 적이 몇 번이나 있던가. 이 흔한 인사가 우리를 같은 식탁에 마주 앉혀 뜨거운 밥 한술 삼키게 한 적은 있었나. 기억도 남지 않을 밥 한번 먹자는 약속들은 입 밖에 나오는 순간 무의미하게 사라진다. 그 약속이 사라진들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의미 없는 약속은 잊혀질 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행자들은 이 아무런 의미 없는 허망한 약속을 지킨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낯선 이에게 마음을 열고 시간을 쓴다.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앞으로의 여정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나 투어를 함께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행자들은 쉽사리 마음을 열고 밥 한번 같이 먹자는 말을 뱉어버리고 만다.
- '밥 한번 같이 먹어요' 중에서

내가 머물던 숙소 앞에 매일 밤 할머니와 함께 팔찌, 모자와 같은 기념품을 파는 어린 남자 소년이 있었다. 매일 밤 소년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팔찌와 열쇠고리를 팔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소년은 숙소로 돌아오는 나를 발견하면 마치 친구를 만난 것처럼 활짝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겨우 팔찌를 하나를 샀을 뿐인데 날 친구처럼 대해줬다. 그 친절에 놀라 엉겁결에 인사를 하며 못하는 스페인어로 더듬거리며 몇 살 인지 물어보았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얇은 옷을 입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 씩씩하게 물건을 팔고 있었던 그 아이의 꿈은 뭐였을까. 좋아하는 운동은 뭐고 좋아하는 음식은 뭐였을까. 미처 건네지 못한 질문들이 마음에 울렁거려 코끝이 시큰거렸다.
- '팔찌 파는 10살' 중에서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무엇인가를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황홀하게 멋있는 장소에서 적당히 사진 몇 장을 찍고 불편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수다를 떠는 재미를 알게 되는 것. 20대의 나라면 시간이 아깝고 본전을 뽑지 못하는 것 같아 한 장의 사진이라도 더 찍으려고 애썼을 텐데 30대의 나는 그때의 나와 달랐다. 앞으로 내가 느끼게 될 세상도 어쩌면 지금과 많이 다르겠지 싶었다. 마흔의 내가 소금사막에 온다면 나는 어떤 방법으로 이 근사한 풍경을 즐기고 있을까. 아무리 궁금해도 지금은 알 도리가 없으니 설레는 마음을 품고 천천히 기다리는 수밖에.
- '소금사막을 즐기는 방법' 중에서 

그해 여름은 낭비로 가득했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시간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훌훌 털어 행복을 샀다.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근처 슈퍼마켓에서 들고 오기 무겁다고 외면하던 수박을 큰마음 먹고 사 오는 일. 그리고 그 수박을 보기 좋게 반으로 갈라 수저로 빨간 속살을 수저로 푹푹 긁어먹어 비타민을 섭취하는 일 정도였다. 그날의 우리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사이 좋게 나눠 먹다 반갑게 달려오는 떠돌이 개를 다정하게 쓰다듬는 일 정도에 넘치게 행복했다. 그해 여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뿐인 친구였고 가족이었으며 연인이었다. 너로 가득했고 나로 가득했던 그해 여름은 누구에게는 낭비로 보였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커다란 행복이었다. 그해 여름은 온 세상에 너와 나뿐이었다.
- '낭비' 중에서

예전의 나는 좋아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좋고 싫음이 확실했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싫어하는 일들은 확실해졌다. 출근길 사람이 많은 지하철, 월말 마감, 자꾸 오르는 기름값과 월세 내는 날. 이 세상에 싫은 것들 투성이라 나의 하루는 우울했고 울적했다. 사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은 너무나 사소하고 보잘것없어서 좋아한다고 입 밖에 꺼내는 순간 비웃음을 받을까 부끄럽고 무서웠다. 싫어하는 것들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어엿한 어른인 척 살아가는 나. 뭐가 먹고 싶은지 묻는 물음에도 어떤 영화를 볼까 하는 질문에도 아무거나 상관없다는 적당한 대답을 달고 사는 나. 있잖아 사실 취향이라는 건 기름지고 넉넉한 토양에서 피어나는 꽃이 아닐까. 집에서 가져온 버리고 싶은 분홍색 이불과 천 원짜리 싸구려 식기들로 가득 찬 좁은 주방에서 라면을 끓이는 나에게 취향이란 게 있을 수 있는 걸까 묻고 싶어.
-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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