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어린이들의 질문 공세는 무서웠습니다. 이른 아침, 나는 아직 정신도 덜 깨어났고, 가방도 옷장에 넣어야겠고, 컴퓨터도 켜야 하며, 일단 몽롱한 머리를 깨우려 입에 커피를 넣어야 할 것 같은데.... 어린이들은 잠시 피해 도망 온 화장실까지 따라오며 쉴새없이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질문공세를 피할 수 있을지 궁리했습니다.
'칠판에 할 일을 친절하게 적어두자. 내가 잠깐 안 보이거나 대답 대신 칠판을 가리키면 이걸 읽고 행동하겠지?'
그러나 그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린이들이 물으면 칠판을 가리켜주기도 했지만, 어떤 어린이들은 내 손가락만 빤히 보고 다시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이건 마치... 질문 지옥에 갇힌 것 같군....!'
마치 '코딩'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자세히 설명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지 못한 곳에 늘 어린이들의 질문이 버티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명령어를 덜 만들었어….) (20쪽)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엉뚱한 너희들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는 건 참 재미난 일이야.
내 안에도 너희처럼 생생한 목소리를 내는 꼬마가 있을 텐데, 개구리 올챙이 적은 정말 기억이 안 나나봐. 그래도 작은 것을 더 자세히 보게 되고, 유치한 것에도 감탄하며 울고 웃게 되는 요즘, 이게 너희 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그 우스운 상황에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과 말을 하면서 몰래 빵 터지는 웃음을 겨우 참아내고, 선생 노릇을 하는 게 참 간질간질 괴로울 지경이지.
너희도 스스로 웃긴지 콧구멍을 벌름벌름하면서 참는 걸 보며 속으로는 이런 괴상한 역할극이 어디 있나 싶다니까. 하지만 만날 내가 너희랑 같이 바닥을 디굴디굴 구르며 미친 듯이 웃을 수도 없는 걸 어떡해? 이렇게 반쯤은 진지한 척 하며 넘기는 수밖에. (51쪽)
아니, 도대체 이게 왜 재미있을까? 하는 일에 자지러지듯 웃고 쓰러지는 어린이들. “이게 진짜 재밌어?” 라고 어이없다는 듯이 놀려보려 해도 순수한 얼굴로 해맑게 “네! 진짜 재밌어요!” 해서 말문이 막히곤 했다.
고학년에 비해 작은 동기에도 몰입해서 잘 움직이고, 반면 조금만 수준 높은 단어나 농담을 거의 못 알아듣는 이 꼬마들이 참 이해가 안 되었다. (코딱지, 똥, 방귀 같은 단어를 쓰기만 해도 그들에겐 최고로 재밌고, ‘야 이 말랑말랑 코딱지야!’가 심한 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라? 내가 이제 그들과 비슷한 이유로 웃고 비슷한 감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아기 엄마가 된 기분이 이와 비슷하려나? 어쩌다 만화영화를 보게 되면 슬랩스틱 개그 부분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분명 개그*서트를 화난 듯한 무표정으로 보다가 지루해서 꺼 버리고, 슬랩스틱에 재미를 전혀 못 느끼던 나였는데. 어느새 어린이들에게서 웃음 많은 것이 옮아 버렸다. (97쪽)
교실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것이 늘 쉽지 않지만 그보다는 고맙다고 느끼게 되었고, 희망이 전보다는 단단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먹구름 낀 하늘 아래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더욱 '반짝임을 줍는' 교실살이를 다짐한다. 어린이들의 요정가루 같은 웃음과 삶에 대한 힘을 공짜로 나누어 받으며, 때로는 동료와 눈물과 아픔을 함께 하며, 문득 문득 엿보게 되는 삶의 진실들.
나만의 소박한 과녁:
먹구름을 보느라 도처에 숨어있는 반짝임을 놓치지 않기를. (124쪽)
교사가 되어 아홉 해 동안 끄적끄적 기록한 것 가운데 아홉 살 어린이들과 살아간 해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많아서 따로 엮고 싶었습니다. 또, 일기장에나 쓸 만한 제 생각들도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곁들였습니다. 어린이들 앞에서 어른스럽고 싶지만 사실 좀 어리바리한 초등 교사가 교실에서 살아가면서 고민하고 발버둥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또 진심으로 듣는 행위는, 사람을 살리고 일으켜 세우는 힘을 가진 듯합니다. 이러한 거창한 말을 감히 가져다 붙이기엔 참 부끄럽습니다만, 개인적이고 조금은 모자란 제 이야기들이 책장 너머 누군가의 일상에 작은 위로, 작은 웃음으로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더욱 기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