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로의 업을 가지고, 음악과 글을 지으며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독립출판 그림책 ‘피고지고’의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 @bicimmunyi, @yeong_bichim
망고맛
나는 망고를 먹어 본 적이 없지만 망고의 맛을 알지
낯선 나라의 뜨거운 하늘 위로 떠오른 샛노란 태양처럼 생긴 그 과일은
누군가가 다 마시고 내버린
길바닥에 나뒹구는 음료수 깡통 위에 그려져 있고
껍질을 벗기면 강렬하게 퍼져 나갈 것 같은 이국적 향기는
누군가가 씹다가 뱉어 버린 껌 위에 납작하게 붙어 있고
한 입 베어 물면 과즙과 함께 입안 가득 고일 것 같은 달콤함은
누군가가 들고 먹다가 떨어트린 아이스크림 위에서 녹고 있고
한번 맛보면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은 망고의 맛은
바닥에 떨어진 망고들에게로 몰려드는 개미떼 사이에 있으므로
남국에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망고의 맛은
해 질 무렵, 좁은 숲길을 걷다가 보았던
개미떼에 둘러싸인 채 사지가 찢기고 있던 노랑나비도 알고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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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맛
한가득 그물에 걸린 새우가
최신 설비를 갖춘 공장으로 옮겨져
찜기에서 고온으로 쪄져 죽고
건조기에서 바짝 말려져 죽고
분쇄기에서 곱게 빻아져 죽고
반죽기에서 밀가루와 함께 뭉개져 죽고
성형기에서 납작하게 눌려 죽고
튀김기에서 바삭하게 튀겨져 죽고
포장기에서 숨막히게 밀봉되어 죽고
그렇게 골백번도 넘게 죽으며 새우는
싱싱한 새우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대로 박스에 담겨 전국 각지로 유통되어
동네 슈퍼 진열대 위에서 집중 조명을 받으며 진열되고 있다
새우 과자 속 새우 성분 8%가 되어
외려 살아있을 때보다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포장지 위에 그려진 근사한 프로필 사진을 받아 들고
수줍게 등을 구부리며 온몸을 발그레 물들이고 있다
새우보다도 더 멋있고 맛있는 새우가 되기 위해
오늘도 불 꺼진 진열대 위에서 밤을 새우며 싸우고 있다
8 대 92를, 92 대 8로 뒤집을 수 있는 역전의 명수
MSG를 등에 업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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