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명 | 끝과 시작 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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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끝과 시작 사이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을 걷다
저자: 리누
출판사: 하모니북
출간일: 2018년 11월 19일
쪽수: 188p
크기: 128*188 (mm)
ISBN: 979-11-964025-8-7 (03920)
정가: 14,300원
‘사이’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군 생활 중에 처음 책을 접하고 좋아하게 된 저자는, 그중 여행에세이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끊임없이 읽고 여행을 꿈꾸며 군 복무 중에 받은 월급을 모아 여행을 준비했다. 복학 전, 시간의 틈새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리스본에서 출발해 산티아고까지, 그리고 그 너머. 약 800km를 30일 동안 걸었다. 순례가 끝난 뒤에는 길 위의 특별한 숙소 ‘알베르가리아 노바’에서 4주 동안 자원봉사를 했다. 숨 가쁘게 많은 곳을 다니는 여행보다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느린 여행을 했다.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다름을 배우고, 만남 이후에 오는 이별의 필연성을 느꼈다. 성숙해져가는 기억들을 최대한 솔직하고 담담하게 글로 표현했다. 자극적인 요소 없이 흘러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글들. 잠시 ‘사이’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바친다.
왜 '시작과 끝 사이'가 아닌, '끝과 시작 사이'인가
순례의 마지막 날, 피니스테라 등대 앞에서 함께 노을을 보며 순례를 마무리한 친구가 물었다.
'리누, 너는 이제 순례가 끝났는데 앞으로 무엇을 할래?'
매일 아침 걷고, 지치면 잠드는 게 일상이던 저자는 당황했다.
'글쎄, 잘 모르겠어.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대답을 들은 친구가 웃으며 이야기해 주었다.
'맞아, 네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게 맞는 거야. 그저 너는 순례가 끝난 지금, 그 끝과 시작 사이, 그 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야'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평소 한 가지 일을 마치면 너무 여유 없이 새로운 것에 달려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 '사이'의 의미를 알고 즐겨보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끝과 시작 사이'이다.
순례자 숙소 ‘알베르가리아 노바’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된 이야기
평소 길을 걷다 보면 많은 사람이 원하든 원치 않았던, 도움을 주고 친절을 베풀어 준다. 하지만 길을 걷는 동안 그 가치에 대해 크게 알지 못한다. 어느 날 저자는 평소보다 일찍 ‘알베르가리아 노바’의 순례자 숙소에 도착했다. 씻고 옷을 정리한 뒤 숙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친구 페드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페드로, 너는 왜 여기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
‘이곳엔 순례자가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했다가 다음날 떠나. 내가 그들에게 대가 없는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곳이 이곳이기 때문에 여기서 봉사를 하고 있어. 그들의 피로를 덜어주며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기분 좋은 것은 없어.’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페드로의 이야기가 끝난 후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길을 걷다 무릎을 다쳤을 때 인근 도시까지 차를 태워주고 응급구조대원들한테 상황을 설명해준 사람,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멀리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따라온 사람, 그 외에도 많은 친절을 대가없이 받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 자리에서 저자는 자신도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순례자 숙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받은 친절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순례가 끝난 뒤에 돌아와도 좋다는 숙소 주인의 허락을 받았고, 순례가 끝난 뒤 알베르가리아 노바로 다시 돌아와 한 달 동안 자원봉사를 했다.
리누(이현우)
글 쓰며 걷는 평범한 대학생. 스무 살이 넘어서야 책에 빠지게 되었는데, 특히 여행에세이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늘 여행을 꿈꾸었고, 장장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인생 첫 홀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연히 배운 캘리그라피가 더해져 조금 색다른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이 끝난 후엔, 무얼 해야 할지에 대한 무지와 젊음을 무기로 무엇이든 다 해보는 중이다.
인스타그램 아이디 @leeee_noooo
리스본에서 코임브라까지, 길 위에 오르다.
코임브라에서 포르투까지, 길 위에 스미다.
포르투에서 산티아고까지, 길 위에 새겨지다.
산티아고에서 피스테라까지, 더 깊이 새겨지다.
알베르가리아 노바에서, 길 위에 얼룩지다.
늘 리스본에서 길을 잃었다.
눈에 익은 길이 보여 그곳을 따라 걸었다. 낯익은 건물들, 사람들, 분위기 그리고 시작이란 단어를 붙인 리스본 대성당. 여전히 골목 어귀에서 견고하게 서 있다. 햇빛을 받는 창문은 깨끗하고 주변 관광객과 순례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들뜬 얼굴이 보인다.
순례도 끝나고 알베르게에서 지낸 생활도 마무리 지었다.
모든 게 끝이 나고 다시 시작하려는 사이에 만난 리스본 대성당은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건네주었다.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뒤 돌아 걸었다.
기분의 높고 낮음의 편차가 큰 하루다.
두 번째 코피가 난 뒤로 완전히 의욕을 잃었고 지팡이를 짚으며 걷는 게 아니라 매달려 걸었다. 부상당한 패잔병의 모습이 딱 그 모습이었을 것이다. 걷는 속도와 쉬는 리듬을 계속 신경쓰며 걸었다. 하지만 27km가 넘어가면서 더 많이 쉬어야 했고 더 적게 걸었다.
바람 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차가 다니는 도로 옆 카페에서 매연과 먼지 속에 앉아있다. 자동차 소리와 함께 바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횡단보도 옆 신호등은 바쁘다. 정신없는 아침 출근길 위로 안겨오는 햇살에서 향긋한 품을 느낀다. 우유 속에 즐기는 따뜻한 햇살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달콤한 빵과 우유를 탄 커피가 입 안에서 어우러져 녹는다. 커피 잔내가 입에 남아 다시 한 모금을 마신다.
‘Don't worry, be happy.’
부끄러웠다.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바라본 사람들의 눈은 더 이상 어두운 눈빛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공간에서 서로 도우며 더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그들의 무시한 듯한 행동 속에서 힘든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한 것들이 묻어나왔다. 서로 장난치며 웃는 모습은 순진해 보였다. 나는 얼굴을 붉힐 정도로 정말 부끄러웠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고 선을 그어 버린 나 자신을 반성했다.
맑은 하늘과 멀리 떠 있지 않은 태양은 묵시아보다 더 깊은 노을을 연출해 주었다.
잔잔한 파도는 절벽을 작은 소리로 쓰다듬었다. 태양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소란스럽던 순례자들은 점차 숨을 죽였다. 태양은 노란색 빛을 뿜으며 고개를 숙였고 하늘은 파스텔 색조로 덮여갔다. 노란빛을 뿜어내다, 바다에 젖으며 주황빛으로 주변을 얼룩지게 하고, 은빛으로 바다 위에 길을 만들어 주었다. 해가 바다 밑으로 들어갔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노을의 마지막 잔상까지 눈에 담아 오늘을 기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순례자로서 마지막 해가 지고,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등대에 빛이 들어오고 시니아와 나는 자리를 정리하기 전에 잔뜩 그을린 자국이 있는 돌 옆으로 갔다. 마지막 의식을 준비했다. 그녀는 양말을 태우고 나는 무릎 보호대를 태웠다. 35일 동안 수없이 포기를 생각하게 만든 무릎 부상을 마지막으로 잊고 싶었다. 시니아의 소독용 알코올 덕분에 환하게 잘 탔다. 붉은 재가 연기를 남기며 꺼질 때까지 우린 말이 없었다. 세상의 끝에서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순례자는 무책임하게 ‘끝’을 선고받았다.
모든 의식이 끝났다.
우리는 마을로 향해 가로등 없는 길을 다시 걸었다. 해가 진 하늘이지만 더없이 밝았다. 길을 걷는 우리 앞으로 별 그림자가 보였다. 그렇게 많은 별이 밝게 빛나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눈가에 별빛이 아렸다. 낮은 별은 나무에 걸렸다. 황홀한 기분에 젖었다. 별자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많은 별의 잔망스러움 때문에 포기했다. 마이크가 웃었다.
‘하늘에 떠 있는 은하수는 카미노가 순례자를 위해 준비한 마지막 선물이야. 순례를 마치고 도착한 순례자들이 끝과 시작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걷도록 응원하지. 우리의 영혼도 저 별 중 하나가 되어서 다른 순례자들을 작은 빛으로 응원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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